이원규(1962∼ ) ‘속도’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인간들의 동화책에서만 나온다
만약 그들이 바다에서 경주를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마저 인간의 생각일 뿐
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생각한다 왜 백 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출발선에 슬슬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가
한 오백년 뒤 저의 푸른 그림자로
아예 골인 지점을 지워버릴 것이다
마침내 비닐 하우스 속에
온 지구를 구겨넣고 계시는,
스스로 속성재배 되는지도 모르시는
인간은 그리하여 살아도 백년을 넘지 못한다
미안하지만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들 말고 동화책을 쓰는 족속이 또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 토끼와 거북이가 과연 서로 마주친 적이 없느냐고 또 캐묻는다면, 당신은 정말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다. 토끼장에서 자란 토끼들아 모여라, 우리, 백 미터 늦게 달리기 시합을 벌여보자. 골인 지점은 없다. 너희 삶이 저마다 눈부신 골인 지점이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