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 - 차창룡(1966∼ )
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던 고양이를 친 트럭은
놀라서 엉덩이를 약간 씰룩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북으로 질주한다
숲으로 가던 토끼는 차바퀴가 몸 위를 지나갈 때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가 되어 가고 있다
흰 구름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
짐승들의 장례식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긴 차량 행렬이 곧 조문 행렬이었다
시체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도 소용없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태어나는 바람이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가족들은 멀리서 바라볼 뿐
시체라도 거두려고 하다간 줄초상 난다
장례식은 쉬 끝나지 않는다
며칠이고 자유로를 뒹굴면서
살점을 하나하나 내던지는 고양이 아닌 고양이
개 아닌 개 토끼 아닌 토끼인 채로 하루하루
하루하루 석양만이 얼굴을 붉히며 운다
남북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뒤섞이고 있을 때
출판단지 진입로에서도
살쾡이의 풍장風葬이 열하루째 진행되고 있다
몇 년 전, 지리산 외곽을 걸어서 한바퀴 돌 때, 목격했다. 이 땅은 직선과 수평 숭배에 빠져 있었다. 오래된, 좁고 굽은 길은 다 곧게 펴졌다. 터널과 다리가 길의 높낮이를 없앴다. 길은 없고 도로만 있다. 도로 위에, 사람은 없고 운전자만 있다. 도로에는, 생명은 없고 자동차만 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뀐 길 위에서, 오늘도 뭇 생명의 풍장(風葬)이 치러지고 있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