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이정록(1964∼ )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뿐인 줄 알았지
등 뒤에 두 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어깨 위로 억새꽃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밀쳐놓은 빈손 위에
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뒷짐지고 걷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요즘 엄마들은 젖비린내나는 아기를 뒷등에 업지 않고 안거나 가슴에 품는다. 등은 빈 채로 있다. 그러나 예닐곱 살 때부터 동생을 업고 살았던 예전의 세대에겐 뒷짐지는 버릇이 은연중에 있다. 누나와 언니의 등에 업혀 졸다 깨다 하던 저녁이 있었다. 배 쪽으로 끌어안아 등 뒤로 둥글게 돌려 업던 어머니의 몸동작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