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한 생각'- 이기철(1943~ )
내가 새로 닦은 땅이 되어서
집 없는 사람들의 집터가 될 수 있다면
내가 빗방울이 되어서
목 타는 밭의 살을 적시는 여울물로 흐를 수 있다면
내가 바지랑대가 되어서
지친 잠자리의 날개를 쉬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음악이 되어서
슬픈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눈물이 될 수 있다면
아, 내가 뉘 집 창고의 과일로 쌓여서
향기로운 향기로운 술이 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와서 빚진 것을 다 갚고 떠나기는 어려운 일. '덕분에'라는 말은 그래서 언제고 참 사무친다. 그러나 선잠 속 꿈처럼 금방 잊는다. 큰 꽃다발을 선물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배은(背恩)은 쉽고 보은(報恩)은 어렵다. 그래서 날마다 빚이 는다. 수행자들은 2척8촌 앞을, 팔을 두 번 내다 뻗은 만큼의 앞을 내다보며 걸음을 옮긴다 한다. 내 발걸음이 발 아래 생물을 해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남을 보살피지는 못할망정 해치지는 말 일이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