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처럼'- 김춘수(1922~2004)
여보,
여보란 말이 가까이에 와 있다.
조금은 낯설은 기색이다.
거기서 왜
기웃거리고만 있나,
여보
하고 내 쪽에서 불러준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그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얼굴이 없다고,
여보,
조금은 아직 낯설은 기색을 하고
거기서 왜 기웃거리고만 있나,
멀리 갔다가 방금 막 돌아온 메아리처럼
누가 낮은 소리로
여보,
'여보'라는 말은 들사슴 같은 말. 자상하게 어루만지듯 불러야 좋다. 말년에 김춘수 시인은 먼저 작고한 부인을 못 잊어 이런 비가(悲歌)를 썼다. '멀리 갔다가 방금 막 돌아온 메아리처럼'이란 표현은 얼마나 빼어난가. 동숙(同宿)이란 이렇게 찬찬하고 부드러워야 하는 것이리. 시 쓰는 것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전에 말했던 시인이여, 천상에서는 평안하신가. 지난 밤에도 한 줄의 시를 쓰셨는가.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