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왕년에는' - 강연호(1962~ )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식당엔 사내들 몇이서 밥 대신 소주 들이켜며
저마다의 왕년을 안주 삼고 있었습니다
나도 왕년에는 소주에 밥 말아먹던 시절 있었나요
사내들의 뒷덜미를 움켜쥔 그림자 흔들리고
불빛에 베인 눈시울은 붉다 못해 황량했습니다
쓰디쓴 왕년을 입 안에 털어넣으며
사내들은 헐거운 삶을 더욱 풀어놓았구요
내 늦은 저녁도 소주처럼 쓰고 차가웠습니다
쓰디쓴 밥알들을 입 안에 털어넣고
왕년인 듯 오래오래 씹고 또 씹었습니다
덧난 눈시울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왕년은 누구에게나 걸맞고 화려한 옷. 왕년을 얘기할 때 사내들은 타이틀 매치를 방어한 권투선수가 된다. 그러나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할 것. 너무 자주 과거로 돌아가지는 말자. 왕년의 옷을 꺼내 입으면 지금 내 옷이 허름해진다. 왕년을 화제 삼더라도, 기왕 내친 김에 '여전히 나는 까딱없다'라고 말할 일이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