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정일근(1958~ )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살점 같이 귀중히 여겨 온 줄 알지 못하고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이라는 비밀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들에 나가기 전 아버지가 한 공기의 뜨거운 흰밥을 드시던 모습을 간혹 떠올린다. 그 '밥심'의 생생한 모습을 괴춤에서 꺼낸다. 그러면 삶이 뜨거워진다. '쌀'과 '소'가 그다지 귀한 것이 못 되는 세상이다. 빛의 속도로 바뀌는 시대라지만, 고을고을에서 평생 '쌀'과 '소'를 기둥으로 여겨 살아온 우리네 농심은 어쩔 것인가. 우리의 정신에도 사투리가 필요하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