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실까지 - 최명란
내 생전 이보다 더 따뜻한 연애가 있었을까
뒤틀리는 아랫도리 분만실에 겨우 세우고 파르르 떠는 내 어깨를
그 의사의 하얀 팔이 감쌌다
집에 아무도 없어요
나는 열 달 내내
출산을 위해 챙겨 두었던 가방을 들고 혼자 분만실까지 왔다
눈만 흘겨도 애를 배는가
그 그믐밤 꼭 한 번 밤꽃 아래 잠시 입 벌리고 누웠을 뿐인데
어둠 속에서 사내도 없이 달의 배는 점점 커져갔다
그날 밤 강 건너 깜빡이는 담뱃불을 따라가지만 않았어도……
살면서 내가 선택한 그 많은 일들
기어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소리 없이 운 세월 뒤로
소등된 골목에 새벽별만이 찬 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간 밖에서 있었던 일 백의의 의사에게 모두 일러바치고
서러웠어요 여름날 매미처럼 소리 내어 울고 싶었어요
서장대를 넘어가던 촉석루 새벽달이 남강의 깊은 물속을 들여다본다
까맣게 타버린 내 야윈 가슴과
논개의 열 가락지 사이사이로 살찐 물고기들이 어렵사리 오고 간다
남강의 새벽공기는 차고 물결은 푸르러 차라리 검다
기울던 새벽달이 다시 촉석루 정수리에 초승달로 떠올라
누가 어찌
표나지 않는 내 아랫도리의 죄를 물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