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1970~ )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언젠가 들은 게송처럼, 나는 하릴없이 온종일 두레박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네. 그러나, 당신이 길고 굵은 끈으로 나를 우물에 내려보내 나의 빈 두레박에 맑고 푸른 우물물을 한가득 담아주고 나의 목을 축여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 알았네. 활짝 핀 나의 몸속으로 들어온 한 마리 꽃벌 같은 당신. 내가 당신의 몸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입때껏 당신을 찾아 오래 헤매었네. 먼길을 정처없이 바람처럼 떠돌았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