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사람이 먹고' - 하종오(1954~ )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새가 날아와 씨째로 낱낱 쪼아먹지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벌레가 기어와 잎째로 슬슬 갉아 먹지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나머지 네 먹을 만큼만 남는다
이런 농사는 수지가 맞지 않는 농사다. 이런 농사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농사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 유일하게 새로운 농사법이다. 다 남에게 주면 나는 뭘 먹느냐고 불평하지 말자. 우리는 그동안 과식을 해오지 않았는가. 당신의 살찐 몸을 보아라. 살찐 몸이 당신이 바라는 궁극의 현실은 아닐 터. 이제 새와 벌레를 당신 앞에 앞세워 공양하라. 나는 이 값진 당부를 나에게 먼저 하려 하오니, 이것만은 내가 독식하더라도 허물을 삼지는 마시라.
문태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