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것은 - 오정국 (1957∼ )
텔레뱅킹으로 계좌이체를 몇 번 하고 나니
월급이 바닥난다 약속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비가 오면 우산을 펴고
비가 오지 않아도
서둘러 신호등을 건너간다
모래알은 왜 물밑으로 흘러가나
말이 중얼거리니
몸이 따라가는 것,
비 개인 앞마당의 지렁이 자국
제 몸 긁힌 흔적이
시라면, 저게
생이라면
약속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흙바닥을 기는 햇빛의 뱃가죽엔 흠집이 없는데
비 온 뒤, 지렁이는 왜 거리로 기어 나오는가. 사람들한테 밟혀 죽는 줄 정말 모르는가. 어디론가 꿈틀꿈틀 기어가다가 그만 햇볕에 말라 죽어가는, 저 혼자 온몸을 뒤트는 지렁이를 보면 오, 나의 인생이 더 고통스럽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