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이 아름답다 - 신경림
저분이 선생님이시다. 삼촌의 외경어린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 사랑방은 주춧돌도 집터도 남아 있지 않다. 모란과 작약이 있던 마당에 칙칙한 개망초가 어지럽게 피어 스산하다.
그는 모시 중의 차림이다. 어느새 그보다도 나이가 많아진 내가 그 앞에 앉아 있다. 선생은 평양을 가보았소? 개성을 가보았소? 그것이 당신이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이었소? 나는 묻고, 그는 대답이 없다. 먼 산만 보고 있다.
그 안채도 우물도 간 곳이 없다. 울 너머로 내다보던 살구나무도 없다. 묵밭에 개망초만 스산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묵밭은 허옇게 빛이 바랜다. 산도 하늘도 허옇게 바랜다. 그의 뜻을 따라 목숨을 버린 젊은이들의 넋이 허옇게 바랜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 집은 재생된다.
사랑방과 대문 안으로 들여다보이던 우물과 그 앞의 살구나무가 되살아나고, 집 뒤로 늘어섰던 대추나무들이 되살아난다. 그는 모시 중의 차림이다. 개망초와 젊은 넋들이 묵밭을 허옇게 덮고 있지만,
그 집이 아름답다. 그가 이룬 것이 없어 아름답고 그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더욱 아름답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아름답고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어 아름답다. 그 집이 아름답다, 구름처럼 가벼워서 아름답다. 내 젊은 날의 꿈처럼 허망해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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