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의 아내' 양애경(1956~ )
당신과
당신의 아내인 저와
당신의 아이들
우리들이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오늘뿐
내일이란 없겠지요
적군이란 피의 값으로
여자와 살육과 재물을
원하는 것이라죠 그래서 당신은
당신 꿈 끊기시고 난 이후의
우리의 운명을 걱정하신 건가요?
벌린 제 옷깃 안에
오도도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세요
일가족 집단 자살이라는 우울한 기사가 심심찮게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한다.
저승길에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가는 것이 과연 가장으로서 온당한 행위일까?
그 절박한 사정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극단의 선택 앞에서 분노를 넘어 착잡한
심경을 가눌 수 없다. 가족을 죽이고 결사항전으로 장렬하게 전사한 계백은 추앙
받아 마땅한 인물일까? 국가와 가문의 이름으로 개인의 살 권리를 억압하는 일이
야말로 광기요 야만이 아닐 수 없다. 계백의 후예들이여, 둥지 안의 잠든 새처럼
새근거리는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어다오!
이재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