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채호기(1957~ )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사랑의 피부에 미끄러지는 사랑의 말들처럼
수련꽃 무더기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이 비늘처럼 요동치는
수없이 미끄러지는 햇빛들
어떤 애절한 심정이
저렇듯 반짝이며 미끄러지기만 할까?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를 섞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 연작을 떠올리게 하는 시편이다. 언어로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다.
아는 바와 같이 인상파 화가들은 빛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인상을 그들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화폭에 옮겨 담았다. 애절한 심정으로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 하나(各異不二)가 되어 반짝이는 '물'과
'빛'을 시인은 사랑의 말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재무<시인>
이재무<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