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1951~ ), '생밤 까주는 사람'
속살을 한 번 더 벗겨내고
그리고 새하얀 알몸으로 자네에게 가네
이 사람아
세상이 나를 제 아무리 깊게 벗겨놓아도
결코 쪽밤은 아니라네
그곳에서 돌아온 나는
깜깜 어둠 속에서도 알밤인 나는
자네 입술에서 다시 한 번
밤꽃 시절에 흐르던 눈물이 될 것이네
밤은 물에 불려 까는 게 좋다. 대추나무 연 걸리듯 자주 돌아오던 제삿날 밤 생밤 까는 몫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생밤을 까다 보면 마음이 한곳에 가지런히 모아지고 맑아진다. '새하얀 알몸'이 되어 저를 삼키는 '입술에서 다
시 한 번/ 밤꽃 시절에 흐르던 눈물이' 되겠다는 저 지순하고 절절한 사랑 앞에서 누군들 숙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재무<시인>
이재무<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