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는 내려서 꽃이 되더이다 - 장종권
생각이라는 것은 그렇지요
우주조차 가지고 노는 작은 그릇
그 그릇 속에 겨울비 채워도 밖으로는
함박눈이 날립니다
계절은 시간적인 변화만도 아니라는 점을
보고 왔지요
작은 땅에도 발걸음만 옮기면 나타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마음은 시공을 함께 잡아야 비로소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동산항 작은 포구는 어떻게
그토록 강한 바다를 견뎌왔는지
질문이 되겠습니까
거친 파도가 그리워 동해로 가신 그대에게
이 고요한 땅과 하늘과 우리는
날이 저물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바람보다 파도보다
그 거대한 소리보다 몸통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간절한 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비는 내려서 꽃이 되더이다
봉우리마다 가지마다 편안하게 내려앉아
언제까지 시들지 않을 듯한
눈꽃이 되더이다
생각은 그렇지 않아도 밤낮으로
꽃을 피우곤 하지요
이쯤에서 적당히 고개를 수그려야 하나요
겨울비 촉촉히 젖어 빛나는 꽃이 되었을 때
누이 고모처럼 젖은 손 비로소 다가와
저 빛나는 햇빛이라도 되어줄라나요
마음은 마음에도 없는 말로
먹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