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순(1961~ ), '너 혼자'
1. 너 혼자 올 수 있겠니
2.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
3. 너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겠니
안개가 자욱한데. 내 모습을 볼 수 있겠니.
하지만 다행이구나 오랜 가뭄 끝에 강물이
말라 건너기는 쉽겠구나. 발 밑을 조심하렴.
밤새 쌓인 적막이 네 옷자락을 잡을지도 모
르니 조심해서 건너렴.
나는 삼십 센티미터의 눈금을 들고, 또 나는
사십 센티미터의 눈금을 들고, 또 나는 줄자
를 들고 홀로 오는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1. 너 혼자 말해볼 수 있겠니
2. 너 혼자 만져볼 수 있겠니
3. 너 혼자 돌아갈 수 있겠니
바스락, 바스락, 안개 속에 네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네가 네 청춘을 밟고 오
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하지만 기운을 내렴.
한때 네가 두들기던 실로폰 소리를 기억하렴.
나는, 나는, 나는, 삼십과 사십 센티미터의
눈금을 들고, 줄자를 들고, 홀로 오는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딩동동 딩동동, 네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내 소리를 기억하렴. 하지만,
1. 너 혼자 내려갈 수 있겠니
2. 너 혼자 눈물 닦을 수 있겠니
3. 너 혼자 이 자욱한 안개나무의 둘레를 재어볼 수 있겠니
마지막 인사로 제 시를 옮깁니다. 세계에서 시집이 가장 많이 출간되는,
가장 많이 사랑 받는, 모두가 시인인 나라. 이 땅에서 우리는 역사에 울
다 사랑에 미쳐, 때로는 혼자여도 뜨겁게 살아 갑니다. 시여! 우리에게
축복을.
박상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