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1964~ ) '세수' 전문
어제의 나를 깨끗이 씻어낸다
오늘의 얼굴에 묻은 어제의 눈곱
어제의 잠
어젯밤 어둠 어젯밤 이부자리 속의
어지러웠던 꿈 어제가 혈기를 거둬간
얼굴의 창백함을
힘있지는 않지만 느리지는 않은
내 손길로 문질러버린다
늘 같아 보이지만 늘 새것인 물
얼굴에 흠뻑!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늘엔 오늘 아침 갓 씻어낸 물방울 숭숭 맺힌 나의 얼굴이 있고
그러나 왠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지 않은가
어제는 잔주름만 남겨놓았고
오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매일 아침 한 대야의 물이 우리 삶을 얼마나 새롭게 만들어 주는지!
그러고 보면 물의 정화력(淨化力)에 대한 믿음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신선한 물에 헹구어낸 시선으로 또다시 주어진 하루를 바라본다.
그것은 마치 하루살이가 어제의 죽음을 벗고 또 다른 하루살이로
부활하는 의식과도 같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어제는 씻겨내려간
게 아니라 얼굴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 게 아닌가.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