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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1947~ ) '율포의 기억' 부분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뽑혀 밀려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동해의 시퍼런 파도가 원시적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면, 서해의 검은 뻘밭은
신산한 삶의 짠 내를 물씬 풍긴다. 동해에서는 인간이 한개 점으로 보이지만,
서해에서는 뻘을 뒤집어쓰고 깜박거리는 작은 생명도 유난히 크게 보인다.
그래서 신을 느끼려면 동해로 가고, 인생을 배우려면 서해로 가라 했던가.
소금기에 맨살을 비비며 종종거리는 뭇 목숨들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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