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희(1965~) '이름이 그 남자를 밀고 간다' 전문
그 남자는 키가 크다
그 남자는 신발도 크다
그 남자의 이름은 신발과 키를 합한 것보다 크다
전에는 신발이 그 남자를 밀고 갔다
신발이 없으면 그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이름이 그 남자를 밀고 간다
큰 이름이 큰 신발을 신은 큰 남자를 밀고 간다 잘도 간다
꽃 핀 이팝나무 그늘 아래 선생과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모여 시를 읽었다.
선생이 물었다. 남자, 혹은 여자를 밀고 가는 힘은 무엇인가. 스무살,
혹은 스물 몇 살인 학생들은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했다. 첫번째 학생이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답변을 듣고 선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두번째 학생은 눈이 맑은 여학생이었다. 그 답은 첫번째의 학생과 같은
것이었다. 선생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세번째 학생의 답 또한 같은 것
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선생은 술을 마셨다. 지혜도 사랑도 명예도
정의도 시도 아닌, 젊은 꿈들의 대답은 돈이었다.
곽재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