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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계보학
1. 마징가 Z
기운 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2. 그레이트 마징가
어느 날 천하장사가 흠씬 얻어맞았다 아내와 가재를 번갈아 두들겨 패는 소란을 참다못해 옆집 남자가 나섰던 것이다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였는데, 오방떡 만드는 무쇠 틀로 천하장사의 얼굴에 타원형 무늬를 여럿 새겨 넣었다고 한다 오방떡 기계로 계란빵도 만든다 그가 옆집의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 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짱가
위대한 그 이름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가 오후에 나가서 한밤에 돌아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밤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오더니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일이 사내의 집에서가 아니라 먼 산 너머에서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사내는 오방떡 장사를 때려치우고, 엄청난 기운으로, 여자를 찾아다녔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
4. 그랜다이저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驛馬가 있었다면 여자에게는 桃花가 있었다 말 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 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 시집 『마징가 계보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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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1967~ ) |
1967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평론이, 1997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0년 제6회 현대시동인상을 받았으며, 2005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시적 언어의 기하학』『미래파』, 시집으로는 『황금나무 아래서』『마징가 계보학』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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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이후 권혁웅의 시적 관심은 '80년대 略傳'으로 요약될 수 있는, 기억의 재구성에 집중되는 듯 보인다. 권혁웅이 구축하는 기억은 집단적이며 삶의 지반에 근거한 서민들의 역사이다. 그러한 역사는 철저하게 '野史'에 기대어 있는데, 권혁웅이 이러한 집단기억의 고고학을 통해 노리는 것은 우리가 '노동시'와 같은 거대담론의 압박에 의해 그 영토가 많이 왜소해졌거나 '반-기억' 혹은 '비-기억' 상태로 왜곡된 저간의 민중의 삶을 복원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적 작업은 '애마부인 略史'와 같은 시에서 80년대의 어두운 상징이랄 수 있는 '애마부인 시리즈'를 다분히 해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납작하게, 지글거렸다 어마 뜨거라, 소리 지르며 한 시절을 지나'온 세대론적 아픔과 희노애락을 복원하고 있다. '마징가 계보학'에서도 그러한 작업은 한층 심화되는데, 80년대를 풍미했던 로봇을 시의 영토로 끌어들이면서 그는 그 당시 민중의 삶을 날 것으로 복원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당대의 삶의 반추를 통해서 현재 우리가 숨 쉬고 있는 2000년대라는 괴물의 시대를 까뒤집어 보여주고 있다는데 있다. 역설적으로, 과거에 대한 담론은 현재의 삶을 반성적으로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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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박진성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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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충남 연기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등단. 시집『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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