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옛날 큰 홍수로 사람들과 사람이 이룬 것 다 쓸려가고 천지에 오누이 둘만 달랑 남아 커다란 살덩이 하나 낳았는 데, 천둥 번개의 신이 이 살덩이를 잘게 쪼개 하늘에서 뿌 렸더니 그 하나하나가 땅에 내려와 사람이 되었다 한다.
첫눈에는 오랜 기억이 있다. 가득히 내리는 눈송이들은 먼 옛날 하늘에서 내려오던 아기들 같다. 재갈재갈 떠들며 내려오다가 여기가 좋겠네 다소곳이 마른 풀섶에 내려앉기도 하고 아니 저기가 좋겠어 우 몰려가기도 하고 한 번 더 살펴보라고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소나무 가지에 앉아 다리를 흔들다가 뿌옇게 내려앉기도 하고 여러 놈이 딸랑딸랑 이리저리 풍경을 흔들어대며 장난만 치기도 한다. 그런 밤엔 까마득한 옛날 모든 것 다 벗어버리고 달랑 둘이 한세상을 새로 시작하던 여인이 있었던 것만 같아 그립다. 여기저기 풀섶에서 일하고 있는 흰 눈의 아이들을 데리고 뿌-뿌- 어둠 속에서 허옇게 김을 뿜어내는 당나귀를 타고 그리운 이를 찾아가야겠다. 흰 눈의 아이들은 앞장서 뛰어가다 당나귀의 입김이 신기해 돌아보기도 하고 눈이 마주치면 웃기도 하며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데려다 주리라.
-김진경(1953∼ )시집 『지구의 시간』에서.
김진경
1953년 충남 당진 출생.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동대학원 졸업.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 시부문 당선. 시집으로 『갈문리의 아이들』, 『광화문을 지나며』,『우리 시대의 예수』,『닭벼슬이 소똥구녕에게』, 『별빛속에서 잠자다』, 『지구의 시간』등이 있고 여러 편의 장편소설, 산문집, 교육평론집을 간행했다.
근친상간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경우는 다분히 창세 신화적일 때만 가능하다. 눈송이로 가볍게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이 된 어린 근친의 자식들. 그러나 그 해맑은 이들이 자라서 사회와 국가를 만들고 온갖 제도와 굴레로 스스로를 친친 동여매고부터는 그 아름다운 근친의 사랑을 금기의 전설로 바꾸어버린다. 달래강 전설이나 오누이굴의 전설이 그렇다. 이루어질 수도, 이루어지지도 않는 비극적 결말.
이 시의 밤은 아름답다. 첫눈, 해마다 처음 오는 눈이 아니라, 이 세상에 처음 오는 눈이 사람으로 환생하는 밤이다. 그 자식들을 낳은 여인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고, 그래서 그리운 그 여인을 찾아 나서는 것만 같다. 그 길에 하필이면 당나귀를 타고 타박타박, 어린 눈사람들을 앞장세우고 길을 떠난다. 이쯤서 주인공은 그 여인의 연인이 되고, 어느새 앞장선 아이들을 자식으로 거느린다. 종래에는 그 여인을 아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못 박아버린다. 이윽고 그녀에게 가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 몸은 미래로 가지만, 그리움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마치 희망은 미래에 있지만 찾고자 하는 그리움의 원형은 이미 지나온 것들에게, 오래 전에 있었던 그 무엇들에게 존재했던 것들이라는 듯.
이 지구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시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자연에서 점점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도 인간은 끊임없이 지구의 생명을 부정하며 존재의 무강 번성만 추구하고 있다. 신화적 상상력이 다시금 고개를 내미는 것은 인간이 버리고 온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서 현실을, 인간의 미래를 공포로부터 감싸안으려는 뜻으로 읽힌다. 갈아엎지 못한다면 어린 눈사람들을 데리고 자궁으로라도 되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귀소본능. 그 낭만성이 눈에도 삼삼하게 그려지는 몽유설원도다.
어딘가에 눈이 오고 있을 것 같다는 환상에 사로잡히는 날이다. 시원의 무변에 처음 태동하는 태극의 용틀임을 다독이며 내리는 눈을 생각해 본다. 아무도 살아남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 아니, 첫눈을 닮은 누군가 살아남아 다시금 창세 신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일로, 희망으로 가는 길도 마음만 먹으면 유턴이 가능할 것만 같은 날이다. 이 시 탓(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