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맹숭맹숭하다, 신록 우거져 찾는 발길 따사롭지만 벅차오르진 않는다. 저 밝은 햇살 아래 온전히 내맡겨진 몸뚱어리가 왠지 부끄럽다. 노여움 치솟는 눈 부릅떠 스러져간 혼령들 무덤 위에도 이 영광의 바람과 햇살은 일렁이는가. 타는 입술로 읊조리던 평등한 세상과, 오순도순 속살거리는 평온한 생활은 마침내 우리들 발밑까지 치달아왔는가. 햇볕 머금어 조근조근 퍼지는 나뭇잎의 해사함처럼 우리 곁에서 오붓이 등 기대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아 떠도는 내 몫의 부산스러움만 눈앞에 놓여 있다. 갈 길 몰라 이리저리 헤쳐 보는 손길이다. 당황스러움 입에 물고 칡넝쿨이랑 나무 등걸을 잡고 용을 쓰다가 맥을 놓아버린다. 빈 가슴 등에 지고 산을 내려온다. 길목의 스모그가 먼저 와다닥 내 목구멍을 쳐온다. 차라리 반갑다, 세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부대끼며 견뎌야 할 그 모든 삶의 자락도 거기에 있었다.
▶ 정우영 시인 프로필
19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숭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민중시』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