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년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쑷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골은 어린다.


- 1935

▶ 윤동주(1917∼1945)

북간도 출생. 연희전문 졸업 후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 재학 중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다 사상범으로 일경에 피체, 1944년 6월 2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규슈[九州]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8년에 유고 30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