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7~12)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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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엔가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골목길과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던 꽃밭이
숨어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희망적인 일이겠니
세상 어디엔가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두근거려지는 일이겠니!`
나태주 시인의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라는 시집 속의 모든 말들은 모두 깨끗하고 아름답다. 비오는 날, 숲의 향기를 맡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이 시집을 읽으면 사슴 닮은 눈을 지닌 옛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늘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어쩌다 시상이라도 떠오르면 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지에 적어서 베개 밑에 깔고 자곤 한다. 자다가도 생각이 나면 적어 놓으려고, 그리고 새로 솟은 생각을 더 깊이 익혀 두고 싶어서..., 남들은 단 몇 분 만에 읽어 버리고마는 짧은 시라도 쓰는 이에게 그것은 하나의 커다른 기다림이고 인내의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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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도
언제나 우리들보다 더 먼저 용서하는 새들`
`가벼운 것일지라도
새들은 가끔씩 깃털을 버리는가 보다
버릴 것은 버리면서
가볍게 하늘을 나는가 보다`
권영상님의 새들에 대한 시 몇 구절을 새소리 들으면서 읊어 보았다. 최근에 작가로부터 받은 동시집 <아흔아홉 개의 꿈>의 갈피마다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시어들. 그의 동시들은 내가 가장 많이 편지나 카드에 인용하는 시이기도 하다. 오늘은 고운 꽃다발을 선물로 받아 마침 먼 나라에서 수녀원을 방문한 손님에게 드렸더니 매우 기뻐하였지. 결국 선물은 돌고 도는 것,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만을 위해서 꽉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들더라도 더 필요한 이에게 선뜻 내어 놓을 수 있는 선선함이야말로 인색한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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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가렛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찌 꽃들은 그리도 자기의 때를 잘도 알아 피고 지는 것일까. 늘 조심스럽고 성실하면서도 명랑한 모습의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조촐한 꽃. 수도자의 모습도 이와 같았으면 한다. 우리 성당 앞 십자로의 느티나무는 어느새 키도 많이 크고 잎사귀도 많이 달았다. 1991년 9월, 수녀회 60주년 기념식수로 심은 나무가 해를 거듭할수록 풍채를 자랑하고 있구나. 느티나무야. 너는 매일 성당의 종소리를 제일 가까이 듣고 있지? 수녀들의 인사 이동이 있을 적마다 떠나는 이들과 보내는 이들의 겉모습과 속마음을 누구보다 많이 지켜볼 수 있지? 우리집에 드나드는 다양한 손님들의 표정과 마음도 읽을 수 있지? 네가 곁에 있으므로 우리는 늘 정겨운 느낌이 들고 든든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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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 걸어 두었던 옷들을 다 꺼내어 다림질하고, 떨어진 곳은 꿰매고 하는 일이 즐거웠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서류를 만지는 일과는 다른 느낌이다. 늘 별것도 없는 빤한 살림인데도 한번 움직이려면 무엇이 그리 많은지. 좀더 깔끔하고 소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미루어 두곤 하는 나를 반성한다. 정신의 소유도. 물질의 소유도 모두 필요 외에 여분으로 갖는 것은 자유로운 삶을 방해한다. 예전에 비하면 수도자의 삶의 양식도 많이 편리해지고 부유해졌다고 볼 수 있다. 각 개인이 자기 스스로 절제하고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타락하기 쉬울 것이다. 원내에 새 건물을 짓는 어수선한 틈을 타 30년 만에 도둑이 두 번이나 들어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한번은 우리가 깊이 잠든 밤에, 한 번은 우리가 길게 기도하는 주일 아침에 주방의 유일한 철창까지 부수고 들어와 마음놓고 볼일을 본 듯하다. 경리실의 높다란 유리문을 깨고 약간의 현금을 훔친 뒤 의자 뒤에 커다란 발자국까지 남겨 놓고 갔다. 그후로 할 수 없이 곳곳에 쇠창살을 하게 되니 날마다 투명하게 탁 트인 유리창으로 꽃, 나무, 하늘, 바다를 내다보던 나의 기쁨이 절반은 줄어든 셈이다. 30년 전의 이곳 산, 바다, 언덕은 평화로웠고, 문단속을 좀 소홀히 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인심도 갈수록 각박해지고 이런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모습도 답답하고 우울하다. 하지만 몇 차례나 우리를 몹시 놀라게 한 밤손님의 그 마음도 편치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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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 우리 여기 놀이터에서 아주 조금만 놀다 가도 돼요?”라고 우리가 외출할 때마다 동네 어린이들은 우리 유치원을 가리키며 묻곤 한다. “그래. 조금만 놀다 가라.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지. 응?” 하고 대답하며 그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마음껏 뛰놀아야 어른이 돼서도 구김살없는 사랑을 할 수 있고 인생의 어려움도 잘 헤쳐 갈 수 있을텐데... 아이들의 웃음을 보니 내 마음도 밝아졌다. <시나라고 가는 길>이라는 어린이 시 낭송집도 들으며 동심으로 돌아가 본 날이었다. 어린이들의 순결한 목소리를 들으면 괜히 눈물부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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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성을 내는 것은 늘 이유가 있음을 정당화시키고 남이 자기에게 성을 내는 것은 사소한 부분이라도 못 견디며 억울해 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일 때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온유해지기는커녕 그 반대가 되어가는 모습을 나 자신에게서도 본다. 오늘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 `신경질 난다`는 말을 혼자말로 여러 번 하며 나 스스로 놀랐다. 갈수록 인내심도 없고 너그러움보다는 옹졸함이,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더 크게 자리를 잡아 가니 큰일이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더라도 결코 막말을 해서는 안되는데... 용서, 관용, 인내, 이런 것들이 나이들수록 더욱 어려워진다면 나는 분명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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