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 천상병
저것 앞에서는
눈이란 다만 무력할 따름.
가을 하늘가에 길게 뻗친 가지 끝에
점찍힌 저 절대정지를 보겠다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미묘하기 그지없는 간격을
이어주는 다리(교)는 무슨 상형인가
저것은
무너진 시계 위에 슬며시 깃을 펴고
핏빛깔의 햇살을 쪼으며
불현듯이 왔다 사라지지 않는가.
바람은 소리없이 이는데
이 하늘, 저 하늘이
순수균형을
그토록 간신히 지탱하는 새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