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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시간의 얼굴 16~20) - 이해인
16
때로는 이해할 수 업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삶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이 가을엔 꼭 찾아 얻게 하소서.
꽃이 죽어서 키워낸 열매, 당신이 죽어서 살려낸 나,
가을엔 이것만 생각해도 넉넉합니다.
17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우산도 채 받지 않고 길을 가는 이들의 적막한 얼굴 속에서
나는 당신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삶은 비애를 긋고 가는 한 줄기 가을비일까」
혼자서 나직히 뇌어보며
오늘은 더욱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을 닮고 싶었습니다.
18
언제나 한(恨)과 눈물이 서린 듯한, 그러나 나를 낳아 준 모국의 정든 산천.
하루도 근심이 끊이지 않는 그녀의 쓸쓸한 이마를 보면 눈물이 핑 돕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해
살아서도 이미 죽음의 순간을 맛보는 나의 이웃들을
지금은 그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왜 그토록 힘이 없어 보입니까.
19
오늘은 빨갛게 익은 동백 열매 하나 따 들고 언덕을 오르며,
당신을 향한 나의 그리움 또한 이 작은 열매처럼 하도 잘 익어서
'툭' 하고 쪼개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20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내 하얀 머리수건 위에 올려 놓은 바람.
그리고 손에 쥐어 보는 유리빛 가을 햇살.
잠자리 날개의 무늬처럼 고운 설레임으로
삶을 더욱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당신의 가을 햇살 - 잊지 못합니다.
공지 | isGranted() && $use_category_update" class="cate">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2023.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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