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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판彈(탄) - 김수영
너를 딛고 일어서면
생각하는 것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나의 가슴속에 허트러진 파편들일 것이다
너의 표피의 원활과 각도에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나의 발을
나는 미워한다
방향은 애정 -
구름은 벌써 나의 머리를 스쳐가고
설움과 과거는
오천만분지 일의 부감도보다도 더
조밀하고 망막하고 까마득하게 사라졌다
생각할 틈도 없이
애정은 절박하고
과거와 미래와 오류와 혈액들이 모두 바쁘다
너는 기류를 안고
나는 근지러운 나의 살을 안고
사성장군이 즐비한 거대한 파아티같은 풍성하고 너그러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에게는 잔이 없다
투명하고 가벼웁고 쇠소리나는 가벼운 잔이 없다
그리고 또하나 지휘편이 없을 뿐이다
정치의 작전이 아닌
애정의 부름을 따라서
네가 떠나가기 전에
나는 나의 조심을 다하여 너의 내부를 살펴볼까
이브의 심장이 아닌 너의 내부에는
「시간은 시간을 먹는 듯이 바쁘기만 하다」는
기계가 아닌 자옥한 안개같은
준엄한 태산같은
시간의 퇴적뿐이 아닐 것이냐
죽음이 싫으면서
너를 딛고 일어서고
시간이 싫으면서
너를 타고 가야 한다
창조를 위하여
방향은 현대 -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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