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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 천상병
해뜨기 전 새벽 중간쯤 희부연 어스름을 타고 낙심을 이리처럼 깨물며 사직공원길을 간다. 행인도 드문 이 거리 어느 집 문밖에서 서너 살 됨직한 잠옷 바람의 앳된 계집애가 울고 있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웬일일까? 개와 큰집 대문 밖에서 유리 같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이 애기는 왜 울고 있을까? 오줌이나 싼 그런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자주 뒤돌아보면서 나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 아가야, 왜 우니? 이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우니? 무슨 슬픔 당했다고, 괴로움이 얼마나 아픈가를 깨쳤다고 우니? 이 새벽 정처없는 산길로 헤매어가는 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아가야, 너에게는 그 문을 곧 열어줄 엄마손이 있겠지. 이 아저씨에게는 그런 사랑이 열릴 문도 없단다. 아가야 울지 마!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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