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첫날밤
생명의 비밀 - 오상순
- 너의 결혼식
영원태초부터
속 모르게 한없이 푸른 하늘 밑
끝없이 움직여 돌아가는 대지의 한 모퉁이
해동조선-금수강산 어느 지점
푸른 앞 뜰 마당에서
태양에 빛나는 핏빛도 투명한
그 고사리 같은 어여쁜 손으로
향기 풍기는 흙으로 단을 모으고
깨져버린 질그릇 조각 사금파리 조각
깨진 거울 유리 조각 주워다가
싹트는 아름다운 꿈의 향연
소꼽살림 차려 놓고
비듬초 뽑아다가
하이얀 실낱같은 그 뿌리 어루만져 핏빛인 양 붉어 오도록
신랑방에 불 켜라 !
색시방에 불 켜라 !
제비새끼 모양 어제같이 지저귀던 한 쌍의 동심과 동심,
어느덧 꿈결같이 성숙하여 사랑과 생명의 꽃 피우고 열매 맺으려
그리고 하늘과 땅
하늘과 땅 사이의 온갖 것 상속받고 지배하려
기억광년(幾億光年)의 성운시대(星雲時代)부터 유구한 세월을 무한히 시달린 어둠과 혼돈과 미몽에서 잠 깨듯 깨어나 프로메튜우스의 거룩한 불씨의 선물을 받은 인간의 후예로서 뱀같은 총명의 불 밝혀 지혜와 생명과 미의 결정인 하늘빛 푸른 능금 심장빛 붉은 능금 따 먹어 신만이 비장(秘藏)했던 그 예지 빼앗고 사랑은 원앙 같고 신(信)은 기러기 같고 상사(相思)뱀보다 심각한 애정의 결정체인 양 영원히 새로운 창세기----영원히 새로운 에덴 동산에 영원히 새로운 삶의 창조의욕에 불타는 한 쌍의 아담과 이브 ! 호화롭고 자랑스러운 듯 찬란한 허영의 의상에 휘감긴 채 적나라한 한쌍의 인간 아담과 이브 ! 두 몸이 한몸 되고 두 뜻이 한 뜻 이루어 천지 조화의 대행진곡에 발 맞추어 그 장엄한 첫 발걸음 내어딛는 이 엄숙한 역사적 순간
무극(無極)은 태극(太極)을 낳고
태극은 음양을 낳고
음양은 인간을 낳고
인간은 음양을 포태(胞胎)하고
음양은 태극을 포태하고
태극은 무극(無極)을 포태하고
영원 순화하여 순역(順逆) 자재(自在)하며 흐르는 신성한 혈액의 철학 동방의 생명철학이 여기에 있어,
오~보라 !
이 절대 신비한 생명의 철학 실천코자 20세기도 후반기 지금 여기 이 순간 ! 사랑의 정열에 불 붙은 두 가슴 같은 가락에 두근거리며 환희와 법열에 넘쳐 엄숙히 경건히 머리 숙여 백년을 가약하고 천지신명과 우리 앞에 의연히 서 있는 한 쌍의 새 인간 아담과 이브 !
기나긴 생명의 영겁의 운명의 세월을 서로 다른 모태의 핏줄을 타고 계계승승
속 모를 어둠과 꿈과 섭리 속에 구을러 흐르며 더듬고 더듬어 찾고 찾던 이신동체(異身同體)의 손과 손은 기적인 듯 오늘 이 거룩한 역사적 순간에 맞쥐어지고 사랑과 그리움에 불타는 두 청춘이 샛별같이 빛나는 눈과 눈은
황홀히 서로 마주쳐
영원한 생명의 비밀에 입맞추었네
영원한 생명의 비밀에 입맞추었네
오~ 생명의 비밀 !
생명의 영원한 비밀은 이제
생명의 번갯불 찬란하고
우뢰-천둥치고 지동치며
약동하는 생명의 꽃불 찬란하고 휘황한 가운데
원자핵과 더불어 터지는 기적을 보리라 !
이윽고
영원한 새 생명의 아침을
장엄하고 눈부시게 칠색 영롱한 창공에 걸린 무지개의
아아취를 보리라 !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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