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고통 - 배용제
실습용 애인이 떠나자
갑자기 약지손가락이 생인손을 앓는다
손끝에 모여든 한 방울의 통증으로 온몸이 들끓는다
날림으로 조립했던 애무의 손끝도 그런 증상이었다
애인은 작동될 때마다 덜커덩거렸다
내장을 더듬으면 빠져나온 나사못이나 깨진 파편의 감촉
손끝이 아려왔고
그때마다 몇 방울의 윤활유 같은 욕설을 배설했다
사용기한을 넘긴 애인은 폐기처분 되었다
미세한 느낌들을 친절하게 전해주던 손끝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소스라치듯 물러서는 세상과의 접속이 끊어진다
모든 애무는 관념이 된다
오랜 시간 너무 많은 감촉들이 스며들었다
차갑고 뜨거운, 거칠고 부드러운 세상의 느낌은
추억의 부속품처럼 제각각
내 생을 조립하려 몸속에 전열되었지만
스스로 분해하고 망가지는 느낌에 길들여질 뿐
오래고여 곯아버린 일회용 애인들이
무감각한 몸을 빠져나가려 벌겋게 몰려든다
폐기된 부품들처럼 널려진,
수많은 감촉들이 뒤범벅되어 통증이 인다
나는 한 방울도 안 되는 고통을 감싸쥐고
온갖 생소한 느낌들에게 손가락을 들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