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붉은 손처럼 - 이근일
1
그날의 해변에서 걸어온 발자국과
내 맨발의 살갗이
간곡한 그리움에 빠진다
천국의 입구를 찾지 못해
또다시 연옥을 부유하던
바닷새가 휘청거리며 불 속으로 날아가고
보이지 않는 너의 발과
젖은 내 맨발이 굴리는
지구는 왜 저토록 깊은 근심의 얼굴인가
물에 쓸려 속을 훤히 드러낸
개의 무덤이
타오르는 황혼빛에 죽음을 말리는 사이
우리가 기댈 곳은
바닷새가 남긴 저 희미한 궤적이라거나
서로 닮은 쓸쓸함뿐이라, 각자 처량히
비틀거릴 수밖에
그럴수록 더욱 벌어지는
우리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날 달콤하게
부풀어 오른 이야기와 충만했던 감정을 불러와……
터진 주머니에 애써 채워 넣는 일
우리가 가진, 그 시간의 주머니에선
자꾸 모래들이 새어나와
비틀, 비틀 우리는 서로에게서
끝없이 멀어지지만
2
매혹적인 빛깔로 제 운명의 궤적을 녹이며
날아가는 혜성의 소식을 들은 지 오래,
그 오랜 침묵을 함구하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비의를 찾아 책장을 넘긴다지
그러나 희멀건 파도의
책장을 넘기다
바다 끝으로 밀려난 너의 붉은 손처럼
모래톱 위
꿈틀거리는 불가사리 하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치 너의 소식을 듣고 답장을
부치듯 그걸 주워, 다시 바다로
네게로
잠잠히 띄워 보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