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슬(促膝) - 정원숙
어린 시절 동구 밖 버드나무엔
새들이 세들어 살고 있었지.
새의 부리마다
하늘의 운행이 뭉게뭉게 흘러다니고
나무 밑으로 떨어지는 새똥마다
별빛이 뭉개졌지.
그때마다 나무는 얼마나 가슴을 찔렸을까
새들이 무릎을 맞대고 잠들면
나무는 맞댈 수 없는
무릎이 없어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 그 시절 버드나무처럼
많은 것들을 내 속에 세들여 놓고 살지.
그것들 빨리 피고 지는 꽃을 닮아
예민한 촉(鏃)이 되어
무거운 생각에 머물기도 하지.
바람이 내 가슴구멍마다 창을 낼 때
구름은 내 혈맥 어느 곳을 흐르고 있을까
달빛이 뒤태를 쓰다듬는 동안
봄빛은 서늘한 내 이마
어디쯤을 서성거리고 있을까
그것은 낙화의 액션이었을까
독거미의 독설이었을까
망자의 손톱자국이었을까
나는 내게 묻지.
배꽃 떨어지는 날엔
어디서 삶의 냄새를 암살할 수 있는지
내 어린 사랑이 어디서 말라 비틀린
꽃뱀의 허물을 뒤집어쓰고 있는지
내 몸 속 만신이 돌리는 돌확과
짓이겨진 그대 무릎을 닮은 데칼코마니와
발바닥에 박혀 한없이 부드러워진 굳은 생이여
누구나 버리고 싶은 슬픈 백정의
무딘 칼을 내 가슴은 품고 있다오.
초승달이 내 몸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날
푸른 곰팡이 낀 망부가가
안개 자욱한 내 생의 강을 건너오고
나는 시린 무릎에 낡은 담요를 덮지.
그때 내 어린 시절의 버드나무엔
아직도 새들이 무릎을 마주대고
밤새도록 내 가슴의 촉을 어루만져주지.
시린 무릎을 서로 비비며
시린 무릎을 서로 끌어안으며
따뜻한 비를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