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구렁이 한 마리가 나를 품었다 - 유정임
그는
겨우내 때고 남은 마지막 나뭇단 밑에
어린 내 팔뚝만한 굵기의 몸을 서리서리 감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마적魔寂*함은
다시 살며시 나뭇단을 내려놓는 어머니 등 뒤에 서있는
나를 품었다
그는
해마다 나뭇광 속을 들락거리며 나를 키웠다
사내를 만나게 했고
자식을 낳게 했고
몇 번인가의 통점의 허물을 벗게 했다
그래도 채워 줄 수 없는 그의 허기는
지금
어줍은 말을 실에 꿰는 일을 내게 시키고 있다
언제쯤 그는 나를 통째로 꿀꺽 삼키고
긴 동면에 들 것인가
* 마적魔寂 :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