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 유현숙
- 늙은 상궁의 말
능화문 문살 틈으로 황초불이 흔들립니다
여인의 깊은 바닥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금침을 밟고 문턱을 넘어 대청바닥을
적십니다
급기야 조바심이 옥체의 등골을 타 내리고 용안이 남루해지며 미간에 그늘이
들고 수심 깊습니다
방금 문틈으로 엿 본 몸짓들은 전하의 분부도, 그 분부를 따르는 홍림*이나
중전도 아닌 궐 밖 창가娼家에서나 봄직한 것들이었습니다
애써 마음을 굶기며 화선지 가득 난을 치던 어수御手가 가늘게 떱니다
난 잎 끝에서 불길이 번집니다
하늘 아래 남녀상열지사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익스피어가 그러했고 스탕달이 그러했으며 장안에 떠도는 이 나라 시편詩篇
들이 또한 그러하옵니다
뼈와 뼈가 부딪혀 타는 이토록 지극한 몸 안의 불꽃을 이제 그만 통촉 하십시오
대전大殿으로 드시지요 전하, 등촉을 들고 따르겠습니다
이 또한 만다라가 아니겠습니까
*영화 ‘쌍화점’에서 왕이 동성애 하는 인물-후사를 위하여 중전과 합궁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