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황혼 - 정윤천
動司보다는 名司가 더 마음에 끌리는 시절이 오기는 하는 거겠지
이때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의 초입어름에서
하필이면 민박집이라는 단어 하나가 불현듯이 내 마음에 차올라 아예
그 집의 주인 행색으로 퍼질러 앉아 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까짓것 실행에 옮겨 버려도 괜찮을 수도 있는 거겠지
'바다네 민박집'
때마침 그 집 앞에, 백살도 더 먹은 늙은 팽나무라도 한 그루
마춤하게 자리 잡고 서 계시거든
어느 심심한 저녁나절이면, 저 풍상의 세월, 편지 글씨처럼 아로새긴
잎잎들이 후둑여 주는 푸른 입술파람 소리에 空으로
귀를 씻어도 좋은 하루가 저물어 갈 수도 있는 거겠지
손님들이 다 돌아간 헌 방안을 치워 내다가
거기 지난날 어디에선가 내가 흘리고 온 허물도 몇 올 함께
쓸어 담아 볼 수도 있는 거겠지
내다 버릴 수도 있는 거겠지
처음 이 마을에 들었을 때 텃세라던가 하는 그 짓
꼴불견에 다름아니었던, 이때쯤은 외려 마음 끈끈해진 한 친구에게
내일은 잘 고은 백숙 한 양푼, 터세 삼아 퍼다 놓고는 짜장 흐뭇해 볼 수도 있는 거겠지
내 마음의 황혼이여, 거기 그렇게 安分 삼아 저물어 보아도 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