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속에서야 쉬는 시인 - 정끝별
그는 좀체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다
월간 문예지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했으니
그는 분명 시인인데,
자장면도 먹고 싶고 바바리도 입고 싶고
유행하는 레몬색 스포츠카도 갖고 싶다
한번 시인인 그는 영원한 시인인데,
사진이 박힌 컬러 명함도 갖고 싶고
이태리풍 가죽 소파와 침대도 갖고 싶다
그러니 좀체 시 쓸 짬이 없다
그가 시를 쓸 때는
눅눅한 튀김처럼 불어 링거를 꽂고 있을 때나
껌처럼 들러붙어 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곁에 없을 때
오래 길들였던 추억이 비수를 꽂고 달아날 때 혹은
등단 동기들이 화사하게 신문지상을 누빌 때
그때뿐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때마다
절치부심 그토록 어렵사리 쓴 시들은
그러나
그 따위 시이거나
그뿐인 시이거나
그 등등의 시이거나
그저 시인
시답잖은 시들이다
늘 시 쓸 겨를이 없는 등단 십 년의 그는
몸과 마음에 병이 들었다 나가는
그 잠깐 동안만, 시를 쓴다
그가 좋아하는 나무 몇 그루를 기둥 삼아
그가 편애하는 부사 몇 개를 깎아놓고
그가 환상하는 행간 사이에
납작 엎드려
평소에는 시어 하나 생각하지 않았음을
참회하며
시 속에서야 비로소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