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여자 - 이미산
깊은 밤 홀로 깨어나 달과 만나네 나는 달빛으로 빚어진 여자,
이마에 부서지는 내 전생의 서늘함
달과 지구의 거리는 38만 4400킬로미터 광속거리로 1.3초
1.3초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너에게로 가는, 내 안에 너를 들이는,
눈꺼풀 지긋이 여닫는 데 필요한 충분한
1.3초란 내 질량이 공중에 머무는 동안, 아찔한 달빛 읽어낼 수
없어 의사는 폐경의 시니컬한 처방뿐 내 안의 달빛 보려하지 않아
달빛으로 빚어져 달의 사랑을 익힌 몸이 달빛으로 빚어낸 또 하나의
몸, 그 몸 다시 달빛 차오르는 동안
1.3초란 달 속의 토끼들 수없이 태어나고 계수나무 이파리
팔랑거리고 폴짝폴짝 귀를 늘리고 몇 번의 소풍을 다녀오고
마침내 달 박으로 뛰쳐나와 알록달록 귀고리가 되고 하이힐
따각따각 달처럼 환한 이마로 달빛 속을 쏘다니는 동안
눈동자 깜빡 깜빡, 나의 하루가 건너가고 달의 하루가 건너오네
내 안의 너무 밝고 너무 뜨거운 기억들이네 늙은 여인의 독백 같은
식은 달빛이네 녹슬어 낯설어진 환영이 달빛 속에서 빙 빙 빙
내 병든 달빛 의사는 고쳐주지 않네 둥글게 차올랐다 손톱처럼
가늘어진 삭망, 고성능 망원경에 잡힌 크레이터의 실금들, 구멍
숭숭 초겨울 바람 같은 얼룩들, 깊은 밤 홀로 서 있는 그림자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네 달빛 아래 사라져간 폐점 폐교 폐선……
폐字의 영상을 닮은 저 차가운 달
1.3초의 시간으로 와 닿는, 테두리에 갇힌 거뭇거뭇한 전생이
내 손등에 목덜미에 가슴에 막 둥지를 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