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을 위한 서정시 - 허혜정
다시 의문은 시작되었다
숙맥들은 눈치채지 못할 신호를 돌리다
슬며시 자리를 터는 그들은 어디로 몰려가는 걸까
뒤늦게 홀로 구두를 찾아 신고 내려오는 시간
확실히 내가 모르는 암호가 있는 것이다
악수도 모르고 멀어지던 거만한 그들
뭔가 안 보이는 벽 너머에서
내일이 있는 척 웃어대던 얼굴들
나에겐 너무도 힘들었던 문제들
흥나는 대로 지껄여대던 혀들
내심 옆 사람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알 수 없는 귓속말을 즐기는 그들
굳게 잠가놓은 안쪽에서 그들이
어떤 세상을 세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함부로 넘겨짚진 않지만,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벽 너머 세상, 어쩌면 그 호기심조차
다 똑같은 목적 때문이라 생각할지 모를
그래서 혹 내 꿈을 안다고 재단해왔을지 모를 그들
하지만 성공까지는 바래본 적이 없다
종이가 무엇이란 걸 알기 때문에
목적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다
닥치는 대로 쓰고 핸들을 돌리고 돌리다보면
어디선가 들어맞을지 모를 숫자를 찾아
한 칸씩 한 칸씩 정교하게 조합해 맞춰보는 퍼즐
반쯤 왔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방향을 틀었다
알았다고 생각할 때 바보같이 머리를 쳤다
알만한 농담으로 웃어넘겼던 말도 생각하며 걸었다
오늘 다시 틀렸다고 생각한 말들을 지운다
부패한 방언으로 가득한 대화에서
떨어져 나온 외로운 미치광이가 되어
차갑고 단단한 구멍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단어는 뭘까
꼭두각시 하나 불태울 수 없는 말이라면
시 같은 건 손대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