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둘레 - 전동균
혼자인데도 여럿 같았어요
벌써 마음을 다 쏟아낸 듯했어요
저절로 치켜진 맨 윗가지에
배밀이하는 애기 손톱의 분홍, 분홍 하늘을 모시고 섰는
수정산 계곡 꽃나무
멀리서 오신 손님 같았어요
하룻밤만 묵고 먼데로 떠나실 손님 같았어요
저에게 찾아온 사랑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채
그렇게 떨며 서 있었더랬어요
눈과 귀와 입을 막고서
눈발 날리며 막 저무는 저녁을
마주 섰더랬어요
혼자인데도 여럿 같았어요
한바탕 큰 울음을 쏟아낸 뒤에야 싹트는 미소 같았어요
(오 미소 짓는 별, 별자리들!)
그 옆을 환속한 중 같은 한 사내가
검은 가방을 메고 지나갔더랬어요
가다 서다 가다 서다
오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