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 이경교
묻지 마라, 나는 아우를 죽였다
내 고향이 바닷가 모감주숲이라거나 사막여우에게
양육되었다는 건 모두 부풀려진 전설이다
믿을 만한 사서史書에 따르면, 목이 긴 왕족으로 태어나
열셋에 가출하여 바다를 건넜다고 적혀 있다
궁궐 기둥들이 부식하는 동안 모감주숲은 모래언덕에 편입되었다
사구가 바다 쪽으로 떠밀리는 동안, 사막풀 눈물로 적시며
나는 지나왔다
빛은 그늘에 기대어 자라고 달빛은 구름에 걸려 주름을 접는다
모래무늬와 강 물결이 그걸 흉내내는 사이
내 청춘은 티그리스 강가에서 다 흘러가 버렸다
오래된 수메르 문헌을 뒤적이며 나는 시력을 잃었다
묻지 마라, 내 너를 사랑한 건 눈으로 읽은 경전 때문이 아니다
사랑과 살육이 이웃이었으니
사랑이란 누군가를 겨누는 일이라고, 나는 쓴다
돌아갈 수 없는 게 고향만은 아니다, 누군가 또 낡은 사본 넘기며
영생이나 구원이란 글귀 아래 밑줄을 긋고 있겠지만
애증의 역사 그보다 먼저였으니
마음 캄캄해질 때 알리라
어두워지는 게 저녁만이 아니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