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動詞)를 불러오다 - 한정원
전시실을 돌고 돌아
루브르 박물관 휴게실에서 동사(動詞)를 끌어올린다
결국 역사는 Be 동사와 Have 동사의 교직으로
촘촘해진 시간이라는 것을
그는 그곳에 있었고 그녀는 그를 가졌었고
왕은 신하를 거느렸고 죽음은 거기에 퍼져있었다
존재 없이는 소유도 없었다는 중세의 증거
현재 진행형을 위해 존재 동사는 맨 앞에 서있다
고딕체의 루이 14세는 거기에 있고
나는 갈샐 루이 까또즈 가방을 가지고 있다
대장장이 헤르메스는 마차를 타고 몽마르트 언덕에 있고
나는 헤르메스 지갑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 서있다
생은 이렇게 공터에서 시작해
과거의 시간까지 끌어안고 무겁게 달음박질친다.
Be 동사만으로도 수련이 피어오르던 날
소유하지 않고, 나는 그저 누구였던 날들,
그는 그냥 그답게 천천히 다가오던 날들
전시실의 그림을 가득 실은 카메라는
동양 여자의 목에 걸려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제 나는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것 내려놓고
누구와 함께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그냥 Be 동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