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신(符信) - 최승철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 1
불 속에서 한 여자가 / 한 남자에게 검은 씨앗을 던진다 /
죽은 자의 입을 벌려 채워 넣던 엽전들 / 혹은 아린 곳마다
터져 나오는 비명 / 자신의 마음과 가장 닮은 조약돌을 죽은
자의 입에 넣어주던 풍습
그대라는 밤바다의 크기,
막 알에서 깨어난 거북이의 눈
소멸하는 쪽에서
내가 길게 자라나고 있다
바람이 바위를 움직인다 / 어제 형을 봤어요 / 산에서 도를 닦았다 /
욕조가 깨졌다 / 번지점프를 했다 / 바다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새들은
별들이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에 / 뻐꾹, 뻐꾹 탁상시계처럼 울었다
꽃은 없고 향기만 피어났다
향기가 맺힌 곳마다 오래된 무덤들이
열렸다 한없이 푸른 잎맥을 배경으로
오른손과 왼손을 부비면 /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들이 / 강물 속의 조약돌 하나
만월 하나 베어 물고 있었는데 / 누가 조약돌 속에서 향을 피우는지 / 물결 가득
은비늘로 반짝인다 / 가을비가 타들어간다/ 망자(亡者)를 만나기 위해 선사시대의
제사장들은 / 흰 두루미의 깃털을 부신(符信)으로 사용했다
조약돌을 가슴에 안고
꽃이 진다
소금이 반짝인다
거기쯤에서 의미도 사라졌다
그대도 떠도는 그대를 알지 못하리
세상의 꽃들이 태양을 품고 피어오를 때 / 그 중심에 강의 조약돌을 올려놓는다 /
꽃잎이 하나하나 조약돌의 흐름을 만져본다 / 구두 밑창이 다 닳아 발가락이 빠져나온 꿈 /
아련하게 붉은 숨결이 전해진다 / 손금 위에 조약돌을 올려놓자 /
시공(時空)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