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리 엥바드에서 - 김점미
나는 지금
지난해 마리 엥바드에서의
통속된 사랑을 읽고 있다
가령, 그녀가 온다면
그곳에서 사랑의 불꽃을 피운다면
새벽녘에 다시 그를 버리고
또는 그에게 버림받고 떠나간다면
지난해 마리 엥바드에서는
다시 또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침에
신문의 부고란에서
지난해 마리 엥바드에서 죽어간
그녀를 본다면,
물살에 떠밀려온
그녀의 빨간색 구두 한 짝을 본다면,
각이 지고 그늘진 그 곳
마리 엥바드의 냉정한 평온함을
다시 본다면, 나는
10년 동안의 속앓이 사랑의 끈
놓아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난해 마리 엥바드의 겨울바다는
소나무 한 그루도 남겨놓지 않고
소금기 절절한 이별을
바다 저편으로 쓸어내고 있는데
수평선 너머에서 내게로
밀려오는 쓰라린 석양,
나와 그녀의 젊음의 아세톤 냄새
마지막 손톱의 매니큐어를 풀어
붉게 물들이는 지난해 마리 엥바드에서
나는 지금
다시 그 바다의 통속된 사랑을 엮어간다
그녀가 사랑했고
그녀를 사랑했던
지난해 마리 엥바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