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 안현미
1
일몰 후 아홉 번째의 달이 떴고
그는 동쪽 식탁 위에 왜가리처럼 놓인 촛대에 불을 붙였다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차원으로
그는 침묵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가 사용하는 침묵은 골동품처럼 지혜로웠다
2
그때 폭설 속에 묻어 둔 술병을 꺼내러 갔던 여자가 돌아왔고
그 여자가 데리고 온 낯선 공기는 순식간에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 갔다
3
인생이란 원래 뭘 좀 몰라야 살 맛 나는 법
4
아홉 번째 핫산이 돌아 왔다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차원으로
그는 인생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가 사용하는 인생은 침묵처럼 두꺼웠다
5
다시 아홉 번째 달이 뜨고
다시 시간은 골동품처럼 놓여 있고
다시 이야기는 반복된다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차원으로
원래 인생이란 뭘 좀 몰라야 살 맛 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