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바이올린 - 노향림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옥탑방 지붕은 납작하다.
그는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낡은 중절모에 반듯하게 다린 바지를 입고 내려온다.
지팡이로 좁은 철 계단을 콕콕 두드리며 일정한
리듬을 타고 내려오면 오늘도 그가
밥을 위해 출근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한 시인이 생각난다.
지병인 간 경변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외진 납작지붕 밑 방에서 살았던 시인
허름한 점퍼 차림에 등산모를 삐딱하게 쓰고
삼양동 산동네에서 광화문‘아리스’다방까지
걸어오는 일이 그의 일과였다.
뒷주머니엔 일용할 양식인 소주 한 병이 늘 꽂혀 있었다.
커피 대신 종이컵에 소주만 마시는 그는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은은히 흐르는 귀에 익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아껴 들었다.
다방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하루 해동갑을 했다.
어느 때는 카드 한 장이 손에 쥐어지고,
손으로 만져본 그 카드엔 까칠한 모래가 반짝였다.
한 대 얻어 피운 빈 담배 곽에다 쓴 시는
곡선으로 휘어지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북이 되었다.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북을 치듯 계단을 다 내려온 사내는
이제 지상에서 지팡이를 접고 걷는다.
*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