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바벨탑 - 한용국
- 부재시편 5
라면을 끓이다가
쉬익쉬익 끓어오르는 양은냄비를 보다가
문득 엔터키를 누르고 싶어졌다
그때 우리들의 사랑은
끓는 냄비처럼 불온했으므로
숨막히는 고딕체로
서로의 가슴에 새겨대던
우리들의 바벨탑
뚜껑을 열어 라면을 넣으며
봉해 둔 마음까지 탈탈 털어넣는다
이렇게 삶은 덧없고
추억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저마다 밥벌이로
가족들에게로 애써 돌아서지만
몇 걸음 못 가 구두끈이 풀어지는 사람들
감자탕집은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리고
소주는 조금씩 쓴맛을 잃어버리고
면발이 풀어지기 전에 스프를 뿌리고
익기를 기다려 계란을 풀어 넣는다
라면 끓이는 일조차 사랑이고 헌신이었던
아무도 추억을 염려하지 않았던 시절
김치통에 환하게 묻어 나올 때
나는 돌아가 엔터키를 누르고 싶어졌다
어떤 여백도 다치지 않아 눈물겨웠던
깨알같은 우리들의 바벨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