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가는 길 - 양애경
임실을 지나 남원 가는 길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조그만 동네에도 있을 건 다 있지
여기 살 수 있을 것 같지
북부농협에서 예금을 찾고
농협 상점에서 식료품을 사고
오수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며
당장 오늘부터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지
나는 넝쿨장미인지도 몰라
철사로 엮은 길가 담장에서
이제 막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기 시작하는 붉은
꽃
한 송이 송이로는 보이지 않고
초록으로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에
중간크기 붓으로 몇 군데 문질러 놓은 것 같은
넝쿨장미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여기서 내려서
논두렁 옆 둑길 하나로 걸어 들어가서 방 한 칸 얻고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농협에 계좌를 트고
그리고 농협상점에서 쌀 한 봉지하고 비름나물 한 묶음 사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 같아
어디 있는지 모르는 당신
더 찾지 못하게 꽁꽁 숨어서 살고 싶은 마음
허탕을 친 당신 한 번 더 차를 타고
나 사는 곳으로
찾아오게 하고 싶은 마음
지금 나 그런 마음 아닐까 몰라
임실에서 남원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