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시간아 - 강상윤
줄지렁이들이 아스팔트 바닥 위에
시간처럼 말라죽어 있다
타원형, S자형, 기역자, 니은자 모양으로
밤색 바탕에 핏빛이 선명하다
어떤 것은 짓이겨진 채로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산소를 마시러 나왔다가 당하는 변이라 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흙 속에 물이 스며들어
숨을 쉬기가 어렵다 하는데
나는 지렁이들이 축축한 몸을 말리러
나온 줄로만 알았다
어둡고 축축한 땅 속을 기는 것이 지겨워져서
밝은 태양 아래 목숨을 거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렁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축축한 삶을 말리려던 생각을 접은 적이 있다
어차피 삶이란 어둡고 축축한 걸
밝고 보송보송하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을
미안하다 시간아
숨쉬는 것이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있어라
아스팔트 바닥에 짓이겨져 죽는 것보다 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