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재구성 - 이영식
침묵의 구조는 단순하다
배경이던, 주인이던
맡은바 정물로 앉아 버티는 것이다
구르거나 되바라지지 말고
순정히 각자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
그러니까, 침묵의 화법은
지퍼로 입성을 견고히 채우는 것
재갈을 물리는 일이다
침묵을 한 껍질씩 벗겨보면
속이 텅 비었음을 곧 눈치 챌 것이다
침묵을 뜯어먹는 일은
공갈빵을 씹는 것보다 더 허무하다
그러나, 침묵은 잴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우울과 몽상의 묵시록,
그 무게에 눌려
목을 달아 맨 사람도 여럿이다
말라바르 공중정원에는 침묵의 탑이 서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장례가 치러지는 곳이다
시신을 탑 꼭대기에 올려놓고 독수리가 쪼아 먹게 한다
(어느 쪽 눈알이 먼저 파 먹힐까)
차안과 피안을 가르고 남은 뼈가 탑 우물로 떨어져
아라비아해海로 흘러들어갈 때
영원한 자유에 드는 법을 가르치는
사자死者의 서書
사거리 길 모퉁이
오와 열을 맞춰 쌓아올린 탑이 있다
노파의 하릴없는 기다림이 내장된 사과 피라미드
틈틈이 박혀 붉게 타오르는 저 벽돌은
또 하나, 침묵의 재구성이다
* 침묵의 탑(Tower of Silence) : 인도 마하라슈트라주州 뭄바이에 있는 탑.